1.
밖에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손가락에 거스러미가 난 것처럼 까슬까슬한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무시할 테면 무시할 수 있는 그런 불안. 창문을 열고 밖을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공기와 불안을 환기했다. 사이렌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구급차는 보이지 않았다.
스무 살, 길었던 병원 생활은 나에게 여러 습관과 가치관을 남겼다. 구급차 소리를 들으면 불안해지는 습관도 그 중 하나이다. 지금은 그런 습관들 덕에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 이전 지나치게 걱정 없고 긍정적으로 살던 나에게는 필요했다. 자신의 세상 속에 계속 갇혀 들어가지 않는 자세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사고 이후 나는 나보다 세상에 관심을 갖는 일이 많아졌다.
2.
개발자를 준비하는 동생이 나를 부를 때 나는 대부분 부끄러운 형이다. 나에게 개발은 취미였던 적이 별로 없었고, 동생은 취미처럼 개발을 좋아한다. 동생이 최근 그런 말을 했다. '어떤 일이든 정점에 오르면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나 봐.'
흑백요리사를 본 동생(나는 아직 안 봄)은 젊은 요리사한테 진 어떤 유명 요리사의 자세가 인상 깊었나 보다.
동생은 이어서 말했다. '결국 개발에 은탄환은 없다. 그게 개발의 정점으로 가는 키가 아닐까?'
유명 요리사는 자신이 패배했을 때, 자신의 요리가 정답이라고 심사위원과 다른 요리사들에게 화내지 않았다. 그 유명 요리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리에 답은 무수히 많았다는 것. 자신이 진 것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
[요리에 정답은 없다], [개발에 은탄환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한다]. 나는 세 문장의 유사성에 관해 긍정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결국 '개발에 은탄환이 없다'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지 않을까?
3.
부끄러운 말이지만, 작가를 꿈꿨다. 몇 차례 글모임을 운영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느낀 건 또 단단하고 단디단 절벽이었다. 세상에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았고, 내가 쓴 글을 읽을 이유를 스스로조차 설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깨닫게 된 재능. 나는 글은 못 쓰는데, 글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눈치채는 역량은 좀 있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능력을 너무 개발한 탓이다. 원래 작가라고 하면 자신만의 굳은 신념을 쾅쾅 쏟아내야 하는 건데, 워낙에 중용을 목표로 삼았던 나는 임팩트 있는 글을 동경할 뿐 쓰지는 못했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더크 스트로브 딱 그 모양새였다. 어쨌건 과거의 그런 경험을 기반한 글또에서의 내 목표는, 우리 코어에 있는 분들에게 전부 피드백 달기다. 우리 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내 피드백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음 글은 구상한 것들 중에서 나올 것 같다.
1. Zero부터 시작하는 Figma 핥기
2. 스텔스창업 도전기
3. three.js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노력하기 위한 노력
이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데 걸린 시간: 1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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