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뚜따따 2025. 3. 30. 23:55

아마도 고요.

소란스럽게 인생을 채우던 소음들을 기억한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무수히 교차하는 소음 속에서
나는 외로웠던 나머지 그 소음을 꼭 끌어안았다.


이제 서른 개의 해가 나의 나이가 된다.

서른 살. 내  삶을 돌이켜보면 여러 색의 기억들이 가득하다.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누군가를 이해했다 착각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는 걸 듣거나, 반대로 우는 걸 보거나, 사랑하고, 애정에 보답하며 행복하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민폐를 끼치고, 반대로 민폐를 견디며, 때론 누군가 파놓은 악의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그 모든 시간을 넘어 지금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다.
사지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무려 4개나 있는데 그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건강하게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어릴 적엔 내가 서른이 되면, 후줄근한 행색으로 너덜너덜해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은 무척 가혹했고, 나는 삶의 경험을 대부분 회피에 투자한 망캐였다. 어떤 불화나 고통도 현실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관찰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 언젠가 세상을 회피하는 버그가 발생하길 바랐다.
어쩌면 나는 남들보다 피부가 얇은 것 같다. 누군가의 기본적인 악의나 모순이 나에겐 유독 아팠다. 사람을 너무 좋아했고,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걸 사랑이라고 생각(그럴 리가 없을텐데)하며, 그렇게 사람을 앓았다.
작은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면서, 그걸 티내면 나를 싫어할까 두려웠던 나머지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외면하며, 스스로 만든 작은 상자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소란스럽게 인생을 채우던 소음들을 기억한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무수히 교차하는 소음 속에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회피하는 삶을 끝내고 현실과 마주보기로 한 것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회피하던 나를 위해 누군가 대신 괴롭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됐던 것 같다.

사실 내 피부가 얇건, 세상이 나에게 특히 가혹하던, 그런 건 전부 회피였을 뿐이다. 나는 그냥 이기적이고 겁이 많은 정신승리자였다. 후줄근한 행색으로 너덜너덜해져도 세상에 맞서지 않고 보신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것에 관심 없는 척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후 놓쳤던 것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지 1년이 지났다. 술을 줄이고, 담배를 끊었고, 취업을 했다. 예전만큼 혼자 괴롭지 않고, 의지할 줄 알게 됐다. 배려와 존중, 함께 자라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개발자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나서는 주변에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소음이 일정하게 정돈되기 시작하더니, 여러 장르의 음악처럼 들렸다. 소음이라고 생각했다면 소음이었을 것들이었다.

 

소란스럽게 인생을 채우던 소음들을 기억한다.
소음 속에서도 고요하게, 고요하게

 

배불뚝이 서른 살이 된 지금 이젠 30년 가까이 항상 느끼던 '소음과 불안'보다 이번 달 가계부나 오늘 저녁 반찬, 여행 계획에 관심이 많아졌다. 또 이렇게 현실로 불려 와 보니 참담하고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지만, 괜찮다. 정말 괜찮다. 내 삶을 매일 새롭게 만드는 행복들이 널려 있고, 어느 곳에 있어도 괴롭거나 우당탕탕 불안하지 않으니까. 요즈음 습관처럼 '평화롭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렸을 적 상상하던 '후줄근하고 너덜너덜한 녀석'은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이다. 볼이 빵빵해진 상태로 평화로운 아저씨가 된 지금, 아무래도 이런 내가 있도록 노력해 준 내가 고맙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으니까. 떠밀리듯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줬으니까.